뿌리

인간은 입으로만 먹고사는가?

아니다. 첫째, 인간은 시각을 통해서 먹고산다. “눈요기”한다고 하지 않는가! 후각을 통해 냄새를, 미각을 통해 맛을, 청각을 통해 소리를 섭취한다. 또한, 촉각으로 느낌을 먹고살지 않는가? 아이가 하루 종일 뛰어 놀다가 저녁때 현관문을 열면서 구수한 냄새와 함께, 부엌에서 엄마가 저녁준비를 하는 모습을 보는 순간, 군침이 돈다. “배고프지 겸아. 어서 씻고 저녁먹자”하시며 젖은 손을 행주에다 훔치신 후, 총총걸음으로 겸이에게 다가와 등을 다독거리며 재촉하신다. 몇 십초 되지 않는 이 모자간의 만남은 뇌속에서 엄청난 효과를 일으킨다. 오감(五感) 전부가 이 짧은 순간에 자극된 것이다. 무의식중에, 엄마와 겸이의 뇌는, 식사하기도 전에, 사랑이라는 영양섭취를 한 것이다.
사랑이라는 의미 있는 영양섭취를 할 때, 뇌 속에서는 전류가 흐르는데, 특수 기계를 사용하면, 불이 뻔쩍뻔쩍 들어오는 것을 목격할 수 있다. 전류가 흐르며, 나무뿌리 모양으로 뇌 속에서도 뿌리가 내리는 것이다. 전문용어로는 연접발생(synaptogenesis)라 하나, 뇌를 찍은 동영상을 보면 너무나 나무뿌리와 흡사하게 생겼기에 복잡한 용어를 사용하지 않고 뿌리라는 표현을 쓰기로 하겠다.

쓴뿌리, 사랑의 뿌리?

우리가 화를 내 버릇 하면, 화 뿌리가 뇌 속에 생긴다. 고함질러 버릇하면, 고함뿌리, 험담하면 험담뿌리, 미워하면 미움뿌리, 자존심 내세워 버릇하면 자존심뿌리가 실제로 생기는 것이다. 얼마나 놀라운 현상인가? 입맛도 마찬 가지이다. 우리 한국인들은 짠지뿌리, 찌게뿌리, 그리고 과식뿌리 등 수억개의 뿌리들이 어렸을 때부터 생긴다. 특히, 과식뿌리는 보릿고개를 넘은 지 몇 십년 되지 않은 한국인들에게는 아직도 미덕(美德)으로 남아 있다. 그리고 어린아이 때부터 권장된다. 아이가 배부를 때가지 먹어야, “아, 착하다. 이쁘다,”라고 칭찬하지 않는가. 초대를 받으면 많이 먹어줘야 서로 편하다. 그러면서, 부절제한 습관들이 길들여지는 것이다.
소리를 한번 버럭 지르면 이유와 핑계를 막론하고, 내가 화풀이 한 것을 합리화 시킬 수 있는 충분한 명분이 있다 할지라도, 화 뿌리/미움뿌리는 이제 내 속에 꼴 지어 진 것이다. ‘가끔가다, 육식이나 과식하는 것은 괜찮지 않은가? 당뇨병, 고혈압이 당장 생기는 것도 아닌데’라고 흔히들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병이 진단되기 이전에도 뇌 속에서는 그릇된 습관을 이루는 뿌리가 자라나는 계기가 되는 것이다
놀랍게도 성경에는 이러한 뿌리이야기가 나온다. 그릇된 습관을 통 털어서 성경은 다음과 같이 한마디로 표현한다. 히브리서 12장 15절을 한번 펴보자. 그리고, 밑줄을 치자. “너희는 돌아보아 하나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있는가 두려워하고 또 쓴 뿌리가 나서 괴롭게 하고 많은 사람이 이로 말미암아 더러움을 입을까 두려워하고.” 필자는 몇 년전 이 말씀을 접하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물론, 그 전에도 본적이 있는 내용이었으나, 놀라운 것은 성경이 과학보다 2000여년 앞섰다는 것이다. 사도바울이 필시 나무뿌리를 비유해서 말씀하셨을 것이다. 이제 과학이 발달해 뇌 속에도 뿌리가 있다는 것을 밝혀내었다. 모든 생활 속에서, 특히 과학 속에서, 실물교훈을 찾으려는 신앙인으로서는 희열이 넘치는 발견이었다. 그래서, 쓴 뿌리와 대조되는 뿌리를 찾아보았다. 신나게도 찾을 수 있었다.

웃어 버릇 하면 웃음뿌리, 기도하는 습관을 들이면 기도뿌리, 감사하는 습관을 기르면 감사뿌리가 생길 것이 아닌가? 좋은 습관들은 다음과 같이 표현되었다. 에베소서 3장 17을 찾아 줄치자.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쓴 뿌리와 대조되는 사랑의 뿌리가 성경에 나오지 않는가? 참으로 감동의 순간이었다. 바로 이러한 깨달음의 경험을 하면 성경말씀이 송이꿀(시 19:10)보다 더 달게 느껴지는 것이다. 뇌 속에서 번쩍 번쩍 불이 들어오며, 영혼을 소생(시 23)시킨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데살로니가 전서 5장 16-18절)는 말씀도 내가 복종해야하는 하나님의 명령이기 보다는 그 분의 사랑의 호소인 것이다. 내 속에 사랑의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 성령을 열매가 주렁주렁 열리도록 바라시는 그 분의 본심을 알게 되는 것이다. 쓴 뿌리가 사랑의 뿌리로 대치되는 것을 성경은 거듭남이라하고 과학은 뉴스타트라고 한다. 둘 다 새 출발인 것이다.

과연, 그릇된 습관이 고쳐질 수 있는가?

쓴 뿌리가 내 힘으로 없어지고, 사랑의 뿌리가 내 능력으로 키워지는 가? 결코 그렇지 않다. 미국에는 유명한 중독퇴치 프로그램이 있다. Alcoholic Anonymous, Nicotine Anonymous, Sex Anonymous, Gambling Anonymous등 알콜홀, 담배, 성, 노름중독 등에서 환자들을 구제하는 프로르램등이 있는데, 이 프로그램들이 약물치료를 포함한 어떤 치료보다 더 효과 적이다. 회복되는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다음과 같은 발언으로 새 삶을 시작한다. “내 이름은 쟌입니다. 나는 알코홀 중독자입니다. 내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고 그 분의 힘을 의지 할 때 나의 치유가 가능하다는 것을 확신합니다.” 정말 놀라운 현실이다. 너무나 효과가 탁월하기 때문에 이 프로그램들은 종교적인 프로그램으로 간주되지 않고, 중독치료의 기준으로 정착되었다. 에스겔 36장 26절에 치유의 이치가 나온다.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굳은 마음은 쓴 뿌리에 해당되고, 부드러운 마음은 사랑의 뿌리가 아닌가?! 인간 스스로가 마음(뿌리: 욕망)을 좌우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하시는 일이라고 명백하게 나와 있다. 이 것이 바로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 인 것이다. 이 것은 신학적인 용어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우리생활에 속속들이 적용되는 사상이다. 내가 갈비찜이 너무 맛있고, 화끈한 비빔냉면을 너무 즐겨먹는데 억지로 침 삼키며 참는 것이 뉴스타트 프로그램이 끝나고 얼마나 가겠는가? 프로그램이 끝나고 은혜 많이 받고 귀가하는 길에 내 앞에 가로 채는 차 뒤에서 급정거를 하며, 내 입에서는 어떤 말이 튀어나오고, 내 가슴에서는 어떤 감정이 치미는가? 아무리 내 힘으로 하려고 해도 안 된다. 인위(人爲)를 붙여 쓰면 거짓 위(僞)가 된다. 人(인간) +爲(함). 즉, 인간의 행함은 거짓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영은 우리를 바꾸어 놓는다. 그리스도의 의(義)를 깊이 깨닫는 것이 내 자신을 바꾸는 기초가 된다. 앞의 의(義)자는 아(我: 나)위에 양(羊: 그리스도)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것 또한 놀라운 원칙을 내포하고 있다. 바로 이러한 생활개선의 이치를 성경과 의학을 통해 구체적으로 다음호에 다루어 보겠다.

겨울연못과 여름연못

겨울에 꽁꽁 얼어있는 연못을 상상해보자. 그 연못에 돌들이 날라 들어온다. 작은 돌들은 퉁겨 나가고 큰 돌은 얼어있는 연못을 깨트린다. 반면에, 여름연못은 어떠한가? 작은 돌들이 날아오면 작은 파문을, 큰 돌들이 날아오면 큰 파문을 일으키고 잠시 후에 고요해 진다. 여기서, 엄청난 이치를 발견할 수 있다. 연못은 우리의 마음이다. 돌들은 외부에서 날아오는 불가피한 스트레스요인들이다. 꽁꽁 얼어붙은 겨울연못(쓴 뿌리)의 경우, 작은 돌이 오면 퉁기고(매일 있는 대인관계에서의 충돌), 큰 돌이 오면 깨진다(파산, 파혼, 질병). 여름연못(사랑의 뿌리)은 아름다운 파문에 이어 고요해 질뿐이다. 연못은 스스로 여름연못이 될 수 있는가? 얼었던 겨울 연못은 태양에 의해 녹게 되어있다. 이 태양은 바로 의의 태양이신 예수를 상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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